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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그 위대함 ㅜㅜ 나 태지 빠돌이 ㅜㅜ
이름 : 서태지 (본명:정현철)
출생 : 1972년 02월 21일
신체 : 173cm/55kg/O형
학력 : 서울재동초 - 서울대동중 - 서울북공업고
직업 : 가수
취미 : R/C (무선조종), 스노우보드 타기
데뷔 : 1989년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1집 '난알아요' 발표
특이사항 : 1996년 1월 서태지와아이들 공식 은퇴
1998년 7월 솔로 1집 'Take Two' 발표
대표곡 : Take Two, Take Five,
경력 : 1989년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 베이스 연주자
1992년 4월 ~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수상 : 2004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락부문)
청소년들에게는 '문화 대통령', 신세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아이콘
서태지는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가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젊은 뮤지션으로, 청소년들에게는 '문화 대통령', 사회적으로는 신세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중학교 2학년때 베이스를 처음 구입하면서 음악을 시작한 서태지는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던 중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5인조 밴드 '하늘벽'과 '활화산'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의 꿈을 키웠다. 북공고 재학시절 서태지는 신중현이 운영하는 카페인 우드스탁에서 김종서와 신해철을 만나 록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하게 됐고 시나위 4집을 통해 공식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92년 3월, 서태지는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교실 이데아", "필승" 등 수많은 히트 곡과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 가요계를 평정,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었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파격적이고 신선한 음악으로 청소년들을 사로잡았으며 기존의 음악들과는 다른 음악, 다른 몸짓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창작의 고통을 참지 못해 가요계를 떠나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 미국으로 떠났다.
은퇴한 뒤에도 세상은 그를 그리워했다. 음악계는 그가 남겨놓은 잔재가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 아티스트는 간데 없이 유사품만 들끓었고 그의 빈자리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 공황으로 다가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에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기대는 더욱 증폭되어 다시 돌아올 즈음에는 거의 모든 분야가 광분했다.
그의 값어치는 IMF에도 불구하고 최대치로 솟았고 그가 들고 온 첫 솔로 앨범은 너무나도 생소한 음악 이였음에도 여전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라디오와 TV, 언론은 이 난해한 음악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지만, 새로운 것을 항상 주류의 한 가지 편입시키는 권능을 발휘했던 그는 이번에도 "Take2"와 "Take5"로 가뿐히 100만장을 넘어섰다.
1998년에 발표한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은 얼터너티브의 노선에 닿아있다. 끊임없이 변화를 수용하는 그의 자세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에 가진 은퇴 후 첫 공연에서 오프닝 곡으로 쓰인 "Take1"은 인류의 탄생 신화 중 외계 유입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사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예전에 암시한 듯한 어투로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인과 인류의 탄생관계', '팬들에게 보내는 노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곡' 등이 주제가 된 노래들이 수록돼 있으며 앨범의 타이틀 곡인 "Take2"는 사회문제를 어지러운 군상과 혼돈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Take5"는 그가 발표한 앨범마다 빼놓지 않았던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으며 "Take6"는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느낀 본연의 모습을 찾은 것에 대한 기쁨을 노래했다.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자 해서 붙였다는 테이크(Take) 연작은 짧은 곡 수와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 때문에 화제와 논란을 모았다. 하지만 서태지는 거품의 담론 위로 유유히 미끄러져 내려갔고 팬들에게만 손짓을 했을 뿐 어떠한 의문에도 까닥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에 미친 천재답게 음악으로만 말을 했고 음악으로만 자신을 드러냈다.
그의 국내 복귀 논쟁은 5년 여 동안 끊이지 않았고 그가 국내로 들어와 활동을 한다고 밝혔을 때는 잠자던 도시가 깨어난 듯 소란스러웠다. 갑자기 인터넷은 그의 인사말을 보기 위한 전쟁터가 되었으며 신문은 연일의 그의 사진을 내 걸었다.
2000년 8월 29일, 서태지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들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은 국내 메인스트림에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음악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의 컴백 쇼에는 이제 성인이 된 팬들이 '이제는 우리가 오빠를 지킬 수 있어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목메어 기다린 긴 시간을 열렬한 환영으로 답했다. 과거에도 없었고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이런 문화적 평정은 그의 지지자들은 물론 적대자들까지 숨죽이게 만들었고 음악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걸쳐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그의 새 앨범은 불가해하며 중의적인 가사들과 강성의 드라이브감을 가진 하드코어로 이루어졌다. 댄스계의 판도에 초 강수로 대응한 이 전략은 승자를 가리진 못했지만,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뮤지션이 얼마 없는 이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난 알아요"의 음악적 충격이나 "교실이데아"의 문화적 충격만큼은 강하지 않았지만 "울트라 매니아"와 "인터넷 전쟁"으로 치룬 한바탕 총성 없는 교란은 피폐한 댄스음악에 메말라 가던 팬들의 갈증을 씻어 주었다. 끊임없이 그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모든 팬은 보상을 받았고 항상 기존의 노선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자 했던 서태지는 절대 지지자들의 쌍수를 확인했다.
많은 팬들의 기대 속에 선보이는 2003년 서태지의 스페셜 앨범은 2000년 9월 발매된 6집 앨범 ‘울트라맨이야’의 수록곡을 모두 새로운 사운드로 다시 레코딩 함으로서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사운드로 무장하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널 지우려해'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여 부른 '난 알아요'는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2004년 서태지가 7집 으로 돌아왔다.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하고 한, 미, 일 3국의 정상급 스텝진과 엔지니어들이 참가한.. 총제작비 10억, 마케팅비 10억 규모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획을 긋는 특급 프로젝트! 가요 시장에 진정한 뮤지션의 의미를 되새길 서태지의 7집앨범. 서태지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태지는 대중음악인으로서는 드물게 그에 관한 책도 수권이 나올 만큼 한국 대중음악의 '신화'로도 불리워지고 있다. 살아있는 한국 대중 음악사의 신화적인 인물로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실험정신과 파격적인 신선함을 제공했고 변화를 꿈꾸는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음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http://www.mnet.com
아 빨리 8집 나오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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